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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직 공무원

사회복지 발달사 : 영국의 구빈법 역사를 알아보자

by 공부0909 2022. 6. 27.

영국 사회복지의 시작 : 구빈법 이전과 제정 배경

 

영국의 사회복지는 구빈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구빈법 이전 시대의 빈민 정책은 방임이나 박해, 억압을 통해 시행됐다. 이 당시에는 빈곤을 사회문제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유행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죽었다. 토지를 경작할 노동자가 부족해지자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했다. 임금의 상승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기 위해 법이 제정된다. 구빈법 제정의 주요 배경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봉건제도의 붕괴이다. 봉건사회에서 빈곤은 사회문제가 아니었다. 봉건사회는 출생 신분에 따라 모든 사회적인 지위와 부가 결정된다. 이러한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빈민들이 많아졌다. 많아진 빈민들로 인해 '빈곤'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두 번째, 중상주의이다. 15세기 절대주의 국가부터 산업혁명 시대까지 300년 동안 중상주의(mercantilism)가 유럽 사상을 대표했다. 중상주의 정책으로 부르주아 계층의 사회적 지위가 강화되었다. 노동력이 중시되었고 나태한 빈민들의 저임금을 당연시했다. 세 번째, 헨리 8세의 수장령이다. 헨리 8세는 자신의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과 갈등했다.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고 종교를 만든다. 이로 인해 교회 수도원이 국왕이 소유로 바뀌었다. 교회 수도원에서 보호하던 빈민들은 거리의 부랑인이 되었다. 

 

구빈법의 발전 과정

 

1601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구빈법(The Elizabethan Poor Law)을 제정했다. 기존에는 빈민구제가 교구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전국적 단위로 국가가 빈민구제를 시작했다. 여전히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여겼다. 중앙 정부에 책임기관인 추밀원을 설립하고 구빈 행정 체계를 구축했다. 통제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을 지녔다. 치안 유지를 위한 빈민 관리가 목표였다. 노동 능력의 유무에 따라 빈민을 구분하였다. 이들은 노동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대우받았다.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은 작업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였다. 노동을 거부하면 형벌을 받았다. 노동 능력이 없는 빈민은 구빈원에 수용되어 최소한의 구제만 받았다. 빈곤 아동들은 강제로 고아원에 보내졌다. 교구는 지방 행정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지역 간 교구의 급여 차이로 인해 빈민들이 더 나은 교구로 이동하였다. 좋은 처우의 교구로 빈민이 몰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1662년 정주법(The Settlement Act)이 제정되었다. 빈민들이 교구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동하는 빈민을 강제로 원래 교구로 보냈다. 빈민의 증가로 인한 구빈세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일하지 않고 교구를 돌면서 구걸하는 빈민을 통제했다. 1722년 작업장법(The Workhouse Test Act)이 제정되었다. 전국에 작업장을 설치하게 된 계기이다. 작업장은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을 수용하여 강제로 일을 시킨 시설이다. 대표적인 작업장으로 브리스톨 작업장이 있다. 일자리를 제공을 빌미로 빈민들을 열악한 시설에 가두었다. 구빈 억제 수단으로 빈민들이 구빈 시설을 피하게 했다. 작업장에서 강제로 빈민을 노동시켰지만 생산성은 떨어졌다. 빈민 혹사, 노동력 착취의 문제가 발생했다. 1782년 길버트법(The Gilbert's Act)이 제정되었다. 작업장 빈민들의 생활을 개선할 목적으로 제정된 인도주의적 제도이다.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에게 원외 구호(outdoor relief)를 허용했다. 빈민들은 작업장 인근에 살면서 임금 보조 수당을 받았다. 합리적인 구빈 행정을 위해 교구 연합을 만들었다. 최초로 유급 구빈 사무원을 채용했다. 하지만 구제 확대로 구빈세 부담이 증가했다. 1795년 스핀햄랜드법(The Speenhamland Act)이 제정되었다. 길버트법과 같이 인도주의적인 제도이다. 노동자의 최저 생활을 보장한다. 최저 생계비를 설정하여 임금이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였다. 임금 보조제도는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부양가족 수에 따라 생활비를 책정했다. 그러나 구빈세 지출의 증가로 사람들의 불만이 늘어났다. 1833년 공장법은 최초의 아동노동 복지법이다. 노동 시간과 노동 조건을 규제한 최초의 법이다. 사회적 강자를 규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공장에서 비인도주의적인 처우를 받는 아동들을 보호했다. 1834년 개정 구빈법(The New Poor Law)이 등장한다. 구빈 비용의 증가로 지주 계급이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개정 구빈법의 가장 큰 목적은 구빈 비용의 감소이다. 교구 간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을 완화한다. 길버트법과 스핀햄랜드법에서 시행했던 인도주의적 처우는 모두 사라진다. 임금 보조 제도가 폐지되었다. 개정 구빈법의 핵심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전국적으로 균일하게 빈민을 처우한다. 국가의 보조를 받는 빈민의 처우는 최하층 노동자보다 더 낮은 생활을 한다. 빈민들의 구제는 작업장 내에서만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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